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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Holiness Sakya Trizin

사캬 티신 존자님은 티벳불교 사캬종(灰土宗)의 41대 종정(宗正)으로서 티벳불교 전체에서 달라이 라마 존자 다음으로 여겨지고 있는 분이다. 그는 1945년 9월 7일에 티벳의 싸가쩨 근처에 있는 쩨동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셨다.태어나자 마자 그의 혀에 만주슈리(妙吉祥)의 종자자인 `디`를 써 넣었다. 그날 비범한 무지개가 하늘에 드리워졌다.

 

그 후, 머리카락이 흰 8세 동자(童子)가 나타나서 장수불(長壽佛)이 그려진 탕카를 건네주었으며 1백마리의 야크에서 짠 우유를 수정그릇에 담아 공양물로 올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다섯살때부터 대승(大乘)과 금강승(金剛乘) 양쪽에서  다양한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섯살 때 그는 여러 스승으로부터 도과(道果)를 비롯한 다양한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열 한살에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잠양 켄쩨 최끼 로되로부터는 롱첸닝틱을 모두 전수받고 다른 다양한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불과 14세의 나이에 사캬종의 41대 종정(宗正)이 되었다. 그러나 1959년에, 티벳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인도로 망명하게 되었다. 900년간 이어온 사캬사원을 버리고 빈몸으로 히말라야를 넘어 씨킴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때 그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이듬 해에, 다질링에 사원을 건립하고 승가(僧家)를 재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몇 분의 스승으로부터 아비달마(阿毘達磨)와 중관(中觀), 반야(般若), 사캬 빤디따의 가르침을 배웠다. 켄뽀 아페 린포체로부터는 헤바즈라 근본 딴뜨라에 관한 자세한 주석을 공부하였다. 그는 다질링을 떠나 1963년에 인도 데라둔에 사캬사원을 건립하였고 이후로 그는 인도와 네팔 등지에 많은 사원(寺院)과 강원(講院), 무문관(無門關) 등을 세우고 전세계에 다른 많은 신행단체(信行團體)들을 일으켜 세웠다. 서른 네살즈음인 1978년에는  사캬 오조(五祖)의 모든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그는 사캬 전승(傳承)을 보존하고, 그 가풍을 재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으며,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하고, 수많은 가르침을 전수하고, 많은 저술을 하였다. 그는 깨달음의 성취자이자 뛰어난 스승으로 티벳의 4대 종파의 모든 불자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으며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처에 다양한 법을 펴고 계신다. 인도 데라둔 근처에 있는 사캬사는 사캬종의 총본산(總本山)이 되었다. 사캬 티신 존자는 그곳에서 대중들을 가르치신다.

 

그곳은 강원(講院)을 포함한 모든 것을 갖춘 곳이다. 그 곳은 가르침을 주고 예불을 하는 곳일뿐 아니라

다양한 불교미술이나 불교음악, 승무(僧舞) 같은 것도 가르친다. 사캬종의 대표적인 무문관(無門關)이네팔에서 운영되고 있다. 강원은 티벳동부에 있는 종싸르 강원(講院)의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무려 12년에 걸쳐, 13 가지 논서(論書)를 배우게 된다. 주로 중관(中觀)의 여러 논서와 유가행(瑜伽行)의 다섯가지 논서를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캬종은 티벳의 4대종파 중 하나이고, 만주슈리(妙吉祥)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사캬종은 1073년, 종조(宗祖)이신 쾬 꾄촉 갤뽀께서 창건하신 사캬사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다. 사캬라는 이름은 회색토(灰色土)를 이미한다. 절을 세운 그 지역의 땅이 회색이었던 것이다. 회색토에 세운 사캬사(灰土寺)의 이름은 티벳땅에 널리 알리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사캬 오조(五祖)의 명성은 드높다. 그 다섯 분의 이름이 있었기에 사캬종이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캬종은 교학(敎學)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인도의 대성취자 비루빠에게 전수받은 도과(道果)라는 명상수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것은 헤바즈라 딴뜨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13세기에, 징키스칸의 손자, 고단 왕자는 군사를 보내 티벳 땅을 유린하였고 그는  티벳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라는 사캬 빤디따를 그의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사캬 빤디따는 몇 년간 그를 가르쳤고 고단왕자는 공양물로 그에게 티벳 중부 13개 주를 넘겨주었다.

 

다시 한 세대가 지나꾸빌라이 칸은 사캬 빤디따의 조카인 최갤 빡빠를 그 앞에 불러들였다. 꾸빌라이 칸은 그의 불교 지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으며, 티벳땅 전체에 대한 자치권을 넘겨주었다. 19세기에는, 잠양 켄쩨 왕뽀, 로떼르 왕뽀와 같은 분의 초종파(超宗派)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사캬종이 지닌 가치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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